🏛️ #15. 맑은 강 위의 서글픈 뱃놀이

2022. 6. 2.

2022. 06. 03(금)

신윤복, <주유청강(舟遊淸江)>, 간송미술관

맑은 강 위의 서글픈 뱃놀이

“젓대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백구(갈매기)만 물결 좇아 날아든다(一笛晩風聽不得, 白鷗飛下浪花前).”

한 때 신윤복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인기에 힘입어 신윤복의 <미인도>가 전시된 간송미술관에 대기 행렬이 어마어마해졌죠. 그 전까지는 언제나 선선하게 가서 관람하고 오면 되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간송미술관은 줄을 서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맑은 강 위의 뱃놀이’라는 의미인 <주유청강(舟遊淸江)>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신윤복은 잘 알려진 대로 조선후기에 활동했고, 풍속화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생몰년과 신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학계에서는 대체로 도화서 화원으로 보는 게 맞지 않나라고 여기고 있어요. 김홍도 역시 풍속화로 유명한데 두 화가의 풍속화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김홍도는 당시에도 최고의 화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가 화원 중의 화원이라 볼 수 있는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해주죠. 규장각은 정조가 자신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한 TF팀 같은 기관이었습니다. 본래 도화서 화원들은 도화서(현재의 조계사 혹은 을지로입구쪽 위치)로 출퇴근했는데 차비대령화원이 되면 도화서가 아니라 창덕궁 규장각으로 출근했습니다. 김홍도 역시 차비대령화원이 되면서 그동안 궁궐 밖의 기관으로 출퇴근하다가 궁으로 출근하게 된 건데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세종시 문체부로 출근하다가 청와대로 파견가는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차비대령화원은 규장각의 직원으로서 일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규장각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규장각에서 간행하는 책의 선 긋는 일부터 시작해서 의궤 등을 그렸습니다. 예술가로서의 활동이라기 보다는 국정홍보처의 제작팀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때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밝습니다. 아무래도 정조가 정책을 세우기 전에 일반 백성들의 일상을 확인하고 싶어서 풍속화를 주문했을텐데 왕이 볼 그림이다 보니 어두운 분위기보다는 밝은 분위기로 그릴 수 밖에 없었을테죠. 화면 속 인물들이 전부 웃고 있는 점(심지어 동물들도 웃고 있습니다), 삶의 고단함보다는 노동을 통한 기쁨이 가득한 점 등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윤복의 풍속화는 사회고발 메시지를 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사대부 계층의 문란함, 사치풍조에 대한 주제를 자주 그렸습니다. 아니면 남녀 간의 사랑, 욕망 등을 주제로 삼을 때도 있었죠. 물론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대놓고 외설적인 중국, 일본의 회화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써서 심하게 노골적이지는 않습니다.

<주유청강> 역시 사회고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에서는 이 작품을 1차원적으로 해석해서 사대부들이 그저 기생과 함께 놀고 있는 작품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이미 1차 술자리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신 듯 의관이 정제되어 있지 않은 사대부들이 기생을 데리고 2차로 뱃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림에 잘 드러나 있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중요한 주제의식은 바로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자에 담겨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뒷짐을 진 채 서있는, 유일하게 기생과 놀고 있지 않은 이 중년 남자의 허리띠가 하얀 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가 상중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선시대에는 예법이 목숨만큼 중요했습니다. 상중에 기생과 술을 마시기 위해 외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죠.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요? 아마 어쩔 수 없이 접대하러 나와야 했던 상황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겁니다. 상중임에도,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르는 것을 감수해서라도 젊은 사대부들에게 접대를 하기 위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어느 중인계층의 남자라고 봐야겠죠. 아마 그는 상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상정하고 다시 그림을 보면 내용이 보다 깊게 이해됩니다. 노를 젓는 뱃사공과 일종의 밴드 역할인 악기를 부는 소년 외에 저 중년의 남자 곁에만 왜 기생이 없는지, 술에 취한 채 기생을 희롱하며 노는 남자들은 수염도 나지 않은 어린 자들인데 왜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는 저 남자와 어울리고 있는지 등을요.

홀로 초점을 잃은 채 서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 아마 그는 정말 하기 싫은 발걸음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중인데도 아들뻘인 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질 낮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접대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물들 뒤에 옅은 색으로 곱게 칠한 절벽과 생기가 도는 나뭇잎들, 그리고 잔잔한 물결만 보면 매우 평화로운 풍경으로 느끼게 해주는 데 말이죠. 어쩌면 이렇게 계절감각이 물씬 느껴지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풍경이 그의 초점잃은 눈을 더 슬퍼 보이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며 괜히 대입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저라면… 음…

“아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되냐. 야야 때려쳐. 너 일루 와봐 임마. 그래 너!”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짜루요. ㅎㅎ

성파 대종사,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기울어진 한국미술사 균형"

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한국 채색화를 주제로 한 《생의 찬미》 전시를 6월 1일에 개막한다.

2. 채색화는 전통 회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수묵 중심의 문인화가 미술사의 주류를 이루면서 그동안 한국미술사 서술에서 소외되어 왔다. 《생의 찬미》는 문인화에 기울어진 한국미술사의 균형을 맞추고자 기획된 전시다.

3. 이번 전시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했다. 각 역할별로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 80여 점을 선보인다.

4. 제15대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했다.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 민화 작가 10여 명도 함께 했다.

5. 전시는 전통회화의 역할을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등 네 가지 주제, 총 6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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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rator’s Note

한 6, 7년 정도 전부터 학계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몇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채색화를 연구하고, 책을 내고, 학회같은 모임을 조직하는 등 그런가 보다하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었죠. 저는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학문 용어를 만들어 쓴다던지, 혹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반대쪽에 실려있던 무게추를 과하게 자신쪽으로 옮겨온다던지 등의 행동을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우선 “자연주의”처럼 실체를 잡기 힘든 추상적인 개념과 학문 용어는 함부로 만들면 안된다고 배웠거든요. 지금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등의 용어는 인위적으로 누군가 만들어 강요했다기 보다 역사의 흔적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인정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적절한 용어라고 할지라도 길게 보고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으로 당대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미술의 핵심은 채색화다, 한국미술의 정체성은 채색화에 있다는 식의 주장 역시 일단 보류하는 편입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무게추를 한 쪽에서 덜어 반대 쪽으로 옮기려다 오히려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역시 채색화를 더 연구해야 하고, 문인화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할 영역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정체성과 같은 거대한 개념, 과도한 의미 부여는 좀 꺼려지곤 합니다. 무엇보다 현재는 작품을 발굴하는 게 우선 과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어느 정도 볼륨이 갖춰진 후에야 그 흐름과 속성을 따져도 오류 가능성이 적어질 테니까요.

최근 몇 년에 걸쳐 채색화, 민화 관련 전시들이 지속되고 있는데 최소 10년 정도 후에 어떻게 귀결될 지 궁금해집니다. 과연 애쓴 만큼 채색화가 미술사나, 현대미술에서 주류 영역으로 자리잡혀 있을지, 아님 크게 달라진 게 없을지 말이죠. 앞서 나가서 거대 담론을 정하기 위한 연구부터 하지 말고 개별 화가 연구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아직 연구해야 할 화가, 발굴되지 않은 작품이 너무 많거든요.

《그대로 박생광》 / 강릉시립미술관

1. 강릉시립미술관은 한국 채색화의 거장인 박생광 특별전 《그대로 박생광》 전시를 오는 5월 31일(화)부터 7월 24일(일)까지 진행한다.

2. 내고(乃古) 박생광은 1970년대 단색화 주류의 한국 화단에서 채색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1980년대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는 무속신앙, 불교, 동학 등 종교 소재의 그림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근원을 드러내고 민족의 정신세계를 탐구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창조한 작가이다.

3. 2001년 미술평론가 21인은 한국 현대미술 최고의 작가로 박생광과 이응노를 선정한 바 있다.(2001.01 월간아트)

4.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 국립진주박물관 등에서 지속적으로 그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손꼽히는 한국미술사의 대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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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rator’s Note

박생광은 1970년대 단색화 위주의 화단 분위기에 이어 1980년대 민중미술 유행하는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입니다. 그런데 기사 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화단의 유행과는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채색화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회화는 단청 안료, 아교, 먹을 배합함으로써 만든 아주 영롱한 채색 기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재는 민화, 불교회화, 고구려 고분벽화, 무속화 등 우리나라 전통미술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게 많습니다.

이응노도 그렇지만 박생광의 회화는 얼핏 보면 수많은 전통회화 작가 중에 한 명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오히려 전통회화의 현대화에 성공한 몇 안되는 화가였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갖고 있는지, 표현 방식이 개성적인지, 회화관은 확고한지,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같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화가는 정말 흔하지 않습니다.

박생광은 이러한 자신만의 채색화를 1981년 즈음에 완성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8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척 짧은 시간이지만 이 5년 간의 활동만으로도 1980년대 우리나라 화단이 민중미술 등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풍성해질 수 있었다라고 평가받을 정도입니다. 몇 년만 더 생존하셨다면 화단의 전개 자체가 달라졌을 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죠.

저도 박생광 회화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챙겨봐야 한다는 의무감은 갖고 있습니다. 공부를 해봐야 알겠지만 어쩐 일인지 놓치면 안될 화가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Feel Good Friday

어제 개최한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첫 날인데다가 휴일이어서 엄청난 인파 때문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지만 사고 싶은 책을 고르는 재미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 왔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 개최했을 때보다 규모도 작아지고, 페어 구성은 널널해진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잡지만 따로 크게 섹션을 구성할 정도로 구경할 만한 내용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출판사 부스의 나열 정도더라구요. 그래도 절판돼서 살 수 없었던 책도 구하는 등 다녀온 보람은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동선을 달리 해가며 몇 번인가를 둘러봤는데 반가운 제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친환경을 주제로 한 도서전 속 <반걸음> 전시였습니다. 친환경과 관련된 브랜드들이 참여했는데 예전부터 응원하고 있던 <솔라카우>라는 제품도 출품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평소 즐겨 보는 정치 유튜브 방송에 <솔라카우>를 발명한 요크라는 브랜드의 장성은 대표가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솔라카우>는 태양광 발전을 의미하는 Solar와 소를 의미하는 Cow의 합성어입니다.

아프리카는 우리처럼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한 국가가 많아서 전기 충전을 매일 걱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동네이지만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휴대폰이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녁에 불을 밝힐 때도 당연히 필요하고요. 그런데 충전을 하려면 몇 시간을 걸어가야 겨우 나오는 가게에서 배터리를 구매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대신 심부름으로 이 가게를 가거나 충전을 위해 돈을 버는 일에 투입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장성은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솔라카우>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즉 사진에 나와있는 소 형태의 태양광 충전기를 만들어서 학교마다 보급을 해놓고, 아이들에게 휴대용 배터리를 나눠주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집에서는 배터리 충전을 위해서라도 학교에 아이를 보내게 되고, 아이들은 수업하는 동안 저 기계에 충전기를 꽂아서 충전을 하는 거죠. 수업이 끝나면 완충된 배터리를 갖고 귀가하여 저녁에 부모님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손전등을 켜서 불을 켜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친환경 제품, 구호 활동을 여럿 봐왔지만 이처럼 감탄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간단하며,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과 전기 보급 일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대표의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져서 괜히 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이디어 수립 직후에 홍보를 하던 시점이었지만 아이디어가 좋아서인지 금세 해외에서 호평받으며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몇 년 만에 응원했던 브랜드가 성장해서 다시 만나게 되니 괜히 반갑고 제가 다 흐뭇해지더군요. 최근에 본 가장 멋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이번 주말까지 합니다. 책 할인 판매도 함께 진행 중이니 주말 나들이 삼아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책을 사오는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고 좋더라구요. 가신 김에 <솔라카우>도 관심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 편히 쉬시고요.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