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취향, 안목, 용기가 필요한 시대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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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2(금)

<아트앤팁> 38호

<편륜차 마키에 나전 손상자(片輪車蒔絵螺鈿手箱)>, 12세기, 도쿄국립박물관

편륜차 마키에 나전 손상자(片輪車蒔絵螺鈿手箱)

문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 한중일 삼국 공통으로 칠기 문화가 유행한 것은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칠기 문화 속에서도 우리는 나전칠기, 일본에선 마키에가 유행한 것은 보편적 현상 속 특수성으로 봐야 합니다.

이 작품은 일본 헤이안 시대 때 작품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마키에(蒔絵)입니다. 마키에는 옻칠을 한 바탕 위에 금이나 은가루 등을 뿌려 무늬를 그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칠공예를 의미합니다. 표면 전반에 바퀴들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이 시문되어 있습니다. 이는 소 수레(牛車)의 바퀴가 건조해져서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담궈 놓은 헤이안 시대의 정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시대에 가본 적은 없어도 얼마나 평화로운 분위기였을지 상상 가능할 정도로 그 정경이 잘 묘사되어 있죠.

작품 양식을 보면, 우선 표면에 검은 옻칠을 하고 금가루를 조밀하게 뿌려 땅을 표현했습니다. 물의 흐름과 그곳에 잠겨있는 바퀴는 옻으로 그린 문양에 금과 청금 가루를 뿌리고 다시 옻칠을 하고 연마한 후에 나전을 덧대었습니다. 그래서 빛에 따라 미묘한 색의 변화를 볼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생동감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물에 잠겨있는 바퀴들이 있는 풍경은 이후에도 사랑받아서 일본식 거울(和鏡)이나 경전의 종이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형적인 일본 풍경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달 문화로 다시 이어지는 교류와 소통

2020년 1월 20일에 코로나19 첫 감염자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적인 폐쇄와 사회로부터 고립이란 것을 처음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패턴이라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의 방식 역시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고 바뀌는 것을 보며 꽤 놀랐죠. 지금도 진행중이지만요.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까.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코로나19 이전에는 피자, 치킨 외에는 배달 음식 자체를 안먹었는데 이제는 제 휴대폰에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어플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약속을 깨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몸이 안좋아도 억지로 모임에 나갔던 것에서 이제는 몸이 안좋다 여겨지면 나와 상대를 위해 과감하게 미안하다 다음에 보자고 할 수 있게 되었죠. 안경에 김이 서리는 게 불편하고, 너무 유난떠는 게 아닌가 싶어 미세먼지 경보가 울려도 마스크를 절대 쓰지 않았지만 아마 앞으로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환절기와 겨울에는 쓰고 다닐 것 같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에 저는 문화역서울284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 전시공간을 어떻게 운영해야 좋을지 다들 난감해했습니다. 그나마 정부에서 명확한 지침과 기준을 내려줘서 그에 따르기만 해도 되어 다행이었죠. 관람객은 몇 명까지 받을지, 사전 예약은 시간당 몇 명까지 받을지, 확진자수가 몇 명 이상이면 폐쇄를 할지 등 매일 변화가 있었지만 점차 적응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관 폐쇄가 익숙해졌던 2020년 12월에 온라인으로 신청자를 접수하여 편지지, 우표, 봉투를 보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미술관으로 배달받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편지가 245통, 600페이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의 서사가 담겨있습니다. 미술관은 편지들을 한 데 모아 ‘삼청로 30, 미술관 앞’이라는 웹사이트에 공개했습니다. 일종의 아카이브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발생한 ‘배달’ 문화를 미술과 미술관의 관점에서 조명한 《전시 배달부》전을 하고 있습니다. 물류의 유통이라는 1차 개념을 넘어 배달을 통해 형성되는 소통과 교류에 초점을 맞춘 전시입니다. 이 전시를 통해 미술과 미술관의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해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합니다.

2000년도에 2010년을 예상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PC의 성능이 많이 좋아지겠다, 휴대폰이 점점 작아지겠다 정도였죠. 그런데 2022년인 지금은 2030년대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거창하게 말해 시대의 변혁,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죠. 미술관의 전시 역시 그러합니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만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그러네요.

▶ '삼청로 30, 미술관 앞’ 웹사이트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전시 배달부》전

취향, 안목, 용기가 필요한 시대

1. “미술은 작가의 고뇌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가 아니다. 아트딜러, 컬렉터, 작가가 벌이는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 있다. 미술이 자본과 어떻게 매개되어갔는지를 알면 성숙한 미술시장과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2.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의 책 『그림값의 비밀』(창비)이 다시 출간된 이유다. 양 교수는 2013년 처음 출간 때를 회상하며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책은 최신 데이터를 추가하고 ‘미술 투자를 위한 Q&A 섹션’ 등을 넣어 새로이 내놨다. 미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미술 투자에 대한 변치 않는 사실들을 짚어나간다.

3. 우선되는 건 “미술은 장기전”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책에 추가된 ‘미술시장의 블루칩, 인상주의’ 섹션에서는 미술계의 조롱을 받던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가 화상과 가족의 도움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을 쫓는다.

4. 양 교수는 “현대미술이 인상파와 닮아있다. 지금 대개의 현대미술도 괴팍하고 난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상파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20~30년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미술을 보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평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작품을 발굴하고 판매하는 아트딜러다.

5. 양 교수는 이들을 “제2의 창작자”라고 칭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미술시장에 대입해보면 현실은 막막하다. 양 교수는 “지금 한국의 1차 시장, 즉 작가를 발굴하는 화랑은 전체 화랑 중 10%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중고품을 거래할 뿐”이라고 말했다.

6. 이런 상태를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 올 9월 동시 개최한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라고 했다. “프리즈는 취향을 팔았죠. 확실히 화랑별로 색이 뚜렷했어요. 그런데 키아프는요? 대동소이했습니다.”

7. 최근 미술계의 우려는 한 발 더 나아간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이달 ‘2022년 3분기 미술시장 분석보고서’를 내놓으며 “초현대작가군(1975년 이후 출생한 작가들)이 경매에 바로 유입되어 블루칩으로 등극할 때까지의 시간이 단축됐다”고 했다. 이에 양 교수는 “작가에 대한 평가는 결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10~20년 이후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장 친화적이면 시장 맞춤형 작품 그 이상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8. 이처럼 혼잡한 미술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취향, 안목, 용기”다. 이는 아트딜러뿐만 아니라 컬렉터에게도 필요한 요건이다. 양 교수는 “현재 국내 컬렉터층이 두텁다거나 이들이 연속성을 갖고 작가들을 후원한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컬렉터층으로 급부상한 것은 긍정적이다. 전문 지식보다는 자기 취향이 앞서가는 이들이 향후 미술시장을 이끌 주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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