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다.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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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 10(금)

#46.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다.

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지난 연말에 어느 기업 대표님과 식사를 하다가 ChatGPT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에 그분이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링크 하나를 받았는데 앞으로는 이게 구글을 뛰어넘을 것이다, 혁명에 가까운 도구가 될 것이라고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어떻게 구동되는지도 알려주셨죠. 아직 모두에게 오픈된 건 아닌데 사용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줄테니 논문 자료 찾을 때 한 번 살펴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봐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UI도 그렇고 개발자들 사이에서 뭔가 나왔나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며칠 전에 뉴스에서 ChatGPT가 미국에서 의사, 변호사 시험을 합격했다, 학생들이 논문도 이걸로 써서 학계에서 비상이다, 구글 본사에서 내부 긴급회의를 가졌다는 등 떠들썩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 그때 그게 이 건가??’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어서 그분이 보내주신 링크를 보니 ChatGPT가 맞았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한 템포 앞서 정보를 취득하는 그분을 생각하며 괜히 사업에서 성공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이에 대해 알아보니 이제서야 엄청난 게 나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쓸 때 아주 요긴하겠다!!’

논문 자료를 찾으러 규슈에 9박 10일간 차를 렌트해서 온갖 곳을 뒤지고 다녔던 지난 날이 스쳐 지나가며 박사 논문은 좀 편하게 하려나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인문학까지 장악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죠.

일단 실험을 해봤습니다. 어린 아이가 과자하면 쵸코파이를 떠올리듯 ‘무조건 반사’적으로 <모나리자>가 생각나서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줘”라고 입력했습니다(동아시아 미술을 공부한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여전히 <모나리자>부터 떠오르는지요. ㅎㅎ).

영어로 검색하고 한글로 번역한 화면입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지금까지는 검색을 하고 내가 원하는 부분을 찾아서 문장을 만들어야 했는데 필요한 요소만 적확하게 쓴 것을 보고 ‘직업을 바꿔야 하나’ 싶었죠. 단편적인 질문이었기에 아마 조건을 연이어 붙여가며 물어보면 더욱 풍성한 답변이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곰곰이 고민해보니 객관적인 지식은 얘가 잘 하겠지만 작품을 해석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적인 감성의 언어를 추려내어 이성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건 객관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인생의 경험, 환경의 영향, 수시로 바뀌는 감정이 모두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저는 대화를 할 때 “객관적으로 봤을 때~”라는 말을 가급적 멀리하는 편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무결점의 객관성, 중립성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거든요.

그만큼 가치를 찾아내는 일은 주관적이며 지성체인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AI가 아주 발달하면 이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은 영화 <her>에서 주인공과 OS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처럼 수 싸움을 기반으로 한 계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버무려 표현하는 것. AI가 이에 도달하는 건 아직 요원해보입니다. 그냥 요원했으면 좋겠어요. ㅎㅎ

단순하게 자료 찾아주는 일은 얼마나 잘 하는지도 한 번 시도해봤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로 이응노와 일본회화의 영향관계를 준비중인데 자료라도 빨리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

자료 찾으러 답사부터 떠나야겠습니다.

석사 논문 주제였던 에도시대 화가 다노무라 지쿠덴에 대해서도 찾아봤습니다. 우선 생몰년부터 틀렸습니다. 그는 1777년에 태어나 1835년에 사망했거든요. 아마 영어권 자료가 아니면 한계가 많은 듯합니다.

듣자 하니 유튜버들, 블로거들 사이에서 광고 수익을 위한 콘텐츠 대량 생산하는 툴로 ChatGPT를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의미 파악이 안되는 문장들로 범벅이 된 스팸이 또 생기는 것이죠. 이럴수록 앞으로는 자신의 감성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글이 더 소중하게 대접받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아날로그의 힘은 영원하다”랄까요?

이렇게 저에게 이번 주는 직업을 잃지 않아도 된 한 주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 편히 쉬시구요.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

인상파 화가 터너, 모네가 그린 아련한 하늘, 공기오염 탓이었다.

1.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인상주의 작품의 특색인 몽롱한 하늘이 사실은 산업혁명으로 오염된 유럽의 대기를 표현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 연구진은 터너가 1796∼1850년에 그린 작품 60점과 모네가 1864∼1901년에 그린 작품 38점을 분석한 결과 당시 유럽의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서 두 화가의 작품도 점점 더 흐릿해졌다고 결론내렸다.

3. 두 화가가 활동했던 때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석탄을 연료로 태우는 공장들이 이산화황 등 오염물질을 뿜어냈고 대기에는 미세입자인 에어로졸이 가득했다.

4. 에어로졸은 태양에서 오는 방사선을 흡수하고 분산하는데 방사선이 분산되면 먼 곳에 있는 물체 간 명암과 색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물체 간 경계를 분별하기 어렵게 된다.

5. 연구진은 터너와 모네의 그림에 있는 사물의 윤곽이 배경과 비교해 얼마나 뚜렷한지를 분석했고, 대기에 이산화황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사물의 윤곽도 더 흐릿해졌다고 밝혔다.

6.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더 강한 하얀 색조를 띠게 됐는데 이또한 대기 오염 증가와 연관지었다.

7. 연구진은 제임스 휘슬러, 귀스타브 카유보트, 카미유 피사로, 베르트 모리조 등 다른 인상파 화가 4명의 작품 18점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8. 모네는 1900년 3월 4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안개"라며 "일어나서 단 한 조각의 안개도 없는 것을 보고 겁이 났다. 몸을 가눌 수 없었고 이제 내 작품은 모두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불이 들어왔고 연기와 연무가 돌아왔다"고 적은 바 있다.

* 원문 읽기

당분간 미술시장에서는 고미술품을 사야 합니다

지난 2007년은 유례없는 한국 미술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기점으로 미술시장의 거품은 싹 걷혔죠. 아주 초라해 보일 정도로 미술시장의 경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 미술시장 전체 거래액이 외국에서 피카소 작품 한 점만 못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시장 파이 자체가 작다 보니 미술계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 역시 형편없었죠.

그 후 10년간 횡보세를 보이던 미술시장이 잘 아시다시피 2021년에 다시 크게 성장했지만 불과 1년 만에 그 거품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2021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자체 경쟁력 강화같은 납득할 만한 점에 기인했다면 마음놓고 기뻐했겠지만 사실은 투기 열풍에 숟가락 얹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2007년 미술시장의 상황과 판박이처럼 보일 정도로 똑같은 흐름을 보이는 요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한 번 겪어 봤기에 지난 사례를 기준으로 삼아 미술품 구매에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고전 작품을 추천합니다. 불황에도 가치가 유지되거나 재발견되는 것은 고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사고 싶다면 최소 10년 이상 활동해온 중견 작가의 작품을 권하고 싶네요.

《조선, 병풍의 나라 2》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1. 이번 전시는 지난 2018년 개최된 《조선, 병풍의 나라》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병풍 전시다.

2. 2018년 전시는 조선을 대표하는 전통 회화 형식인 ‘병풍’ 자체를 조명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제작된 병풍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3. 이번 전시에는 15개 기관 및 개인이 소장한 50여 점의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4. 전시는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으로 주제를 나눠 민간과 궁중의 문화적 특징을 대비하며 감상할 수 있게 했다.

5. 민간 병풍을 통해서는 일상생활에 녹아있던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미감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궁중 병풍을 통해서는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 그리고 궁중 회화의 장엄하고 섬세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6. 근대 병풍의 경우 제작 시기를 고려하여 별도의 전시실에 배치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변모한 한국 근대 화단의 일면을 병풍이라는 형식 안에서 관람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7. 전시 도록도 특별하게 제작해 눈길을 끈다. 미술사 분야의 전문가 26명의 참여로 병풍 전반에 관한 다채로운 내용을 담았다. 전체 출품작의 도판과 작품 해설은 물론, 대학과 기관의 연구자들이 새롭게 집필한 글들을 수록하였다. 지난 《조선, 병풍의 나라》 도록과 합치면 총 43편의 논고가 실려있다. 우리나라 전통 미술을 생소하게 여겼던 관람객들에게 한국 고미술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 원문 읽기

📝 Curator’s Note

지난 2018년에 개최된 《조선, 병풍의 나라》에는 저도 참여해서 도록에 원고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작품에 대한 글을 썼는지조차 잊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하네요. 당시 그 전시로 끝난줄 알았는데 이번에 《조선, 병풍의 나라 2》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물관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장품이 많은 박물관은 자체 소장품만 갖고 전시해도 충분합니다. 굳이 외부 기관에 가서 작품 빌려오고, 원고 의뢰하는 등 소위, 일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모아서 보기 좋게 소개해주니 감사하기까지 하네요. 작품들이 엄선된 전시니 꼭 관람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