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최근 운신(運身)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신중함의 양면

지난 달에는 모 미술관의 학예사로 일할 기회가 있었고, 며칠 전에는 어느 지역 미술관 건립을 위한 연구용역팀에 들어올 생각 있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두 기회 모두 감사하지만 안되겠다며 거절 의사를 전했습니다. 거절한 이유가 저도 마음이 복잡하여 정리가 잘 안되는데 우선은 지인들과 함께 일을 해야 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제안에 감사했고 자부심도 생길 만한 자리이긴 하지만 친한 지인들을 직장 선후배로 만난다는 게 제 성정상 불편할 것 같더라구요.

내가 누군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훤히 아는 사람들이기에 기대하는 바가 있을테고, 또 저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고생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떠나야 하는데 지인들이라 매몰차게 떠나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립해서 하고 싶었던 일들(잡지 출간, 커리어 컨설팅 등)이 이제 서서히 자리 잡혀가는 게 느껴지고 있는 것도 이유였습니다.

‘조금 더 경력을 쌓아두는 게 좋으려나…’라는 생각도 들고, ‘다 필요없어. 내가 잘 되면 모든 게 잘 된다’라는 괜한 객기(?)도 드는 등 소심한 저와 과감한 제가 서로 싸우며 지냈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외쳐도 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열심히’만으로는 안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될 게 많아지는 듯합니다. 그 선택의 책임은 점점 커져가기만 하고요.

나에게 좋은 기회인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하고, 후회할지 아닐지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선택들이라 더욱 신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너무 신중했던 탓에 좋은 기회를 놓쳐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일단 제가 선택한 것을 열심히 해야겠죠. “아아아~ 그냥 오랄 때 갈 껄!!” 이런 말이 나오게 되면 조금 쓰라릴 것 같긴 합니다. ㅎㅎ

가벼움의 양면

얼마 전에 어느 지역의 미술관 관장이 연임이 결정된 지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아 서울에 있는 미술관 관장 공채에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지역에서 비판을 받는 기사를 봤습니다. 지난 몇 년간 그 지역 출신 작가를 발굴 및 연구하여 지역의 미술사를 정립하는 데 일조하고, 좋은 전시를 기획하여 지역의 문화예술 거점으로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던 분이라 그 운신이 아쉬웠습니다.

몇 년 전에는 다른 모 지역의 미술관 관장이 부임한 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서울에 있는 미술관 관리직에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관장직도 아닌 그 밑의 관리직을 말이죠. 이직은 개인의 자유고, 존중받아야 할 권리이긴 하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어 그랬겠지만 ‘지금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라며 스스로 삭힐 줄도 알아야하는데 말이죠.

물론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 분들도 어쨌든 기회를 잡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니까요. 다만 신중해야 할 때와 기회를 잡기 위해 과감해질 때를 안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 같습니다. 저는 진학, 진로 등의 문제에서 결정할 때는 최악의 경우의 수까지 상상합니다. 혹시나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겠다 싶으면 비로소 움직이죠. 지금까지는 이런 방식이 잘 맞아들었다고 여기지만 어쩌면 이게 결국 내 발목을 잡는 일이 되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들긴 합니다.

그러나 좋은 기회란 실력만 있다면, 준비만 되어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오는 거겠죠. 일단은 기회를 잡느냐, 안잡느냐를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언제든 기회가 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더 중요할 겁니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가운데 학문의 중요성으로 해석되는 문장을 소개합니다. 저도 다시 되새겨야 할 시기 같습니다.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는다.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때에 이르러 마땅히 부지런해야 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盛年不重來(성년부중래).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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