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종이는 천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년 간다.

2022. 4. 7.

2022. 04. 08(금)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진원국보(鎮院國寶)⟫ 특별전 소개 영상

대만은 한국미술사(동양미술사) 전공자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유럽에 그리스가 있듯,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빼놓고 미술사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시기에나 문화를 주도하는 국가(지역)가 있게 마련인데 중국은 그 역할을 오랜 기간 차지해왔죠. 20세기 이후 미국의 문화가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중국이 아니라 대만을 가야하는 이유는 중국미술사의 최고 명품들이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많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일전쟁 이후 다시 패권을 놓고 싸우던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 내전(국공내전)에서 결국 공산당이 승리했고, 국민당은 대만에, 공산당은 중국에서 정권을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죠. 이때 장제스가 대만으로 패퇴할 때 북경 자금성을 비롯해 중국 곳곳에 있던 유물 중 최고 명품만 추려서 리스트를 만들고 최대한 배에 실어서 대만으로 가져가 설립한게 현재의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입니다. 다급하게 후퇴하며 가져가야 했기에 다 가져갈 수는 없으니 명품 위주로 가져갔습니다. 도자, 공예도 많긴 하지만 운반이 편한 서화(두루마기)를 특히 많이 가져갔습니다.

증명이 된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배로 후퇴하던 장제스를 마오쩌둥이 충분히 격침시킬 수 있었음에도 워낙 방대한 양의 명품급 문화재를 갖고 있어서 그냥 보내줬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저는 1960년대에 중국 문명을 모조리 파괴한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이 과연 그렇게 멋진 일을 했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장제스가 이렇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2,972개의 박스에 명품(자금성 유물 29만점 포함 총 61만 여 점)을 실어 함께 후퇴한 이유는 문화재가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의 정통성은 공산당이 세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국민당이 세운 중화민국에 있다는 주장이죠. 비록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만에 잠시 망명정부처럼 머물러 있지만요. 마치 왕정시대에 옥새를 갖고 피난가는 심정이었을겁니다.

장제스의 이런 결단 덕분에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중국에서는 ‘국립'을 떼고 부른대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상설전에 나온 소장품이 단 한 번도 겹친 적이 없다고 하니 그 방대함과 퀄리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작년 11월에 개최한 ⟪진원국보(鎮院國寶)⟫ 특별전 소개 영상입니다. 메일 제목으로 쓴 “종이는 천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년 간다(지수천년, 견수오백)”는 말은 이 전시의 큐레이터가 천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종이보다 수명이 짧은 비단에 그린 작품이 잘 보존되었다고 소개한 것을 인용한겁니다.

이 특별전은 북송대 최고의 회화작품인 범관의 <계산행려도>,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가 함께 전시된 블록버스터급 전시였습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전시에 나왔다고 하니 아마 원, 명, 청대의 유명한 작품들도 함께 나온 것 같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보러 갔을텐데 정말 아쉽더군요.

북송대는 회화이론이 정립된 시기로서 이후 동아시아 회화의 전범이 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화는 고대부터 시작되었지만 북송대에 싹 한 번 정리되고 이후 원, 명, 청대는 이것에 대한 작용,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죠. 서양미술사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동일한 위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화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직접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 손으로 그린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정치합니다. 진한 먹색의 조화는 웅장한 산 속의 고요함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죠. 이를 잘 소개한 영상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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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구름이 감싸 안은 왕의 정원, 석파정

1.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석파정이 일반에 공개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도심 속 비밀 정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2. 미술관에서 전시를 둘러본 후 4층으로 올라가면 석파정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3. 석파정(石坡亭)은 흥선대원군 별서(別墅)에 딸린 정자이다. ‘물과 구름이 감싸 안은 집’이로도 불리는데, 대원군의 아들인 고종은 이곳을 행전이나 행궁 시 임시 거처로 사용하며 신하들과 함께 국정을 논의했다.

4. 서울미술관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다.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던 공간으로 별서*의 중심부가 되었던 공간이라 볼 수 있다.

5. 바로 앞에는 천년을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천세송’이라 불리는 노송이 있다. 약 650년의 세월을 지내온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6. 조금 더 앞으로 가면 거북이 형상의 거북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삼계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삼계동은 부암동의 옛 지명으로 이곳에서 3개의 시냇물이 만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7. 거북이는 장수와 재운의 상징으로 용, 봉황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 고위 관리나 왕족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의복에 흉배를 부착하였다. 흥선대원군은 본래 자신의 권력을 상장하는 기린을 수놓아 흉배로 사용했는데, 실각 후 고종이 직접 통치하던 시기에는 거북 흉배로 바꾸었다고 한다.

8. 산책로를 따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너럭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거대한 바위는 인왕산이 가진 웅장함을 잘 보여준다. 그 형상이 코끼리를 닮았다 하여 ‘코끼리 바위’로 불리기도 한다.

9. 19세기 말 재야 문인이었던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이곳 별서의 매매를 여러 차례 제안하였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계략을 세워 아들 고종을 행차케 하여 하룻밤 묵게 하였고,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다 하여 김흥근의 소유를 포기하게 함으로써 석파정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10.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난을 치는 등 예술적 활동 장소로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종의 행전이나 행궁 시 임시거처로도 사용했다. 흥선대원군은 거대하고 위엄있는 바위로 둘러싸인 풍경에 감탄하여 자신의 호를 석파로 짓고, 이곳을 석파정이라 부르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11. 석파정은 서울미술관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통합입장권을 구매해야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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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rator’s Note

별서(別墅)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개인 소유지인 별장을 의미합니다. 사대부들이 문예에서 숭상하는 인물 중에 하나가 중국 당나라의 왕유(699-759)라는 인물입니다. 왕유는 관직을 떠난 후에 망천(輞川)이라는 곳에 별장을 짓고 은거하였죠. 이곳에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동료 문인들과 교유하며 지냈습니다.

이렇게 의연하게 세속을 벗어날 줄 아는 삶의 방식과 왕유라는 인물이 지닌 시와 그림에 대한 뛰어난 실력은 먼 훗날 중국과 한국 사대부들의 롤모델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결국 왕유는 문인화의 개조(開祖)로 평가받게 되었고, 그가 지은 시와 그림은 문인화가라면 응당 목표로 삼아 도달해야 할 경지로 여겨지게 되었죠.

삶의 방식 면에서는 자연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너도 나도 별서 하나 쯤은 갖고 그곳에서 친구와 교유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보물로 지정된 김홍도의 <삼공불환도>가 바로 이런 생활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삼공불환(三公不換)’이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삼공(三公)의 높은 벼슬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통령을 시켜준다고 해도 고향에 은거하여 예술을 즐기며 사는게 더 좋다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지금은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왕유는 자신의 별서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를 소재로 『망천집』이라는 시와 그림이 함께 배치된 ‘시화합벽’도 제작했습니다. 이후 별서를 소재로 한 그림이 오랜 세월 사대부 사이에서 유행했는데 이를 ‘별서도'라고 부릅니다. 석파정도 별서 중 하나입니다. 직접 가보면 아시겠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고요하고 좋습니다. 번잡한 서울의 숨구멍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에요.

마침 이 뉴스레터를 보내드리는 4월 8일(금)에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전시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유튜브에 전시 관련 티저 영상들이 몇 개 올라와 있는 것을 봤는데 천경자, 박수근 등의 작품이 나오더라구요. 아마 근현대미술 관련 전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2월 이후로 석파정이 휴관이었는데 마침 잘 됐습니다 :)

미술계를 움직이는 아트테이너들

1. 대중문화와 정통 예술 사이에는 분명 거리가 존재해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 둘의 경계에서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구혜선, 솔비, 나얼, 하정우, 박기웅, 이혜영, 하지원, 김규리, 조영남, 위너의 송민호 등이다. 이른바 대중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거나 그룹전에 참여하고 아트 페어에 출품하며 여느 예술가와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진짜 예술가인가?’란 물음표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른바 아트테이너라 불리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미술대학 나온 것을 신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3.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 뿐만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루소, 프리다 칼로, 장 미셸 바스키아처럼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거장은 수없이 많다.

4. 대신 이들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알아보고 소비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관람객, 즉 대중의 몫으로 넘어오게 된다. 또 자신의 작업에서 의미를 찾고, 새로운 것을 꾸준히 만들어내며 작품성과 예술성을 갈고닦는 것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업보다.

5. 이들 아트테이너의 예술계 활동 반경은 작품을 만드는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아트 페어에서 활약상이 두드러지는데, VIP 오프닝은 물론 수시로 페어장에 심심치 않게 연예계의 소문난 컬렉터가 출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6. 실제로 빅뱅의 지드래곤과 탑은 2019년 미국의 <아트뉴스(ARTnews)>가 발표한 ‘주목할 만한 컬렉터 50인’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7. 방탄소년단(BTS) RM의 영향력은 또 어떠한가. “RM이 본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로 나뉜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그가 관람한 전시는 기필코 입소문을 타고 대중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미술에 문외한이던 이들도 RM이 관심을 갖고 애정을 보인 전시라는 이유만으로 그와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미술사와 작가, 전시를 공부하기에 이른다.

8.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관심과 급격히 높아진 작품 가격은 결코 작가에게 득이 될 수 없다. 작가는 늘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비슷비슷한 것을 답습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높아진 기대만큼 늘어난 수요, 치솟은 가격은 분명 작가의 작업을 옥죄는 사슬이 될지도 모른다.

9.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 문턱이 낮은 미술관, 누구나 될 수 있는 컬렉터. 예술계는 벌써 오랜 시간 이를 꿈꿔왔다. 아트테이너들은 분명 선뜻 다가가기 어렵던 예술을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10. 다만 이들을 ‘따라’ 무분별하게 예술을 소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이제 본인만의 눈과 취향을 키울 차례다. 아트테이너들의 활동에 의해 예술을 마주하는 것이 편해졌다면 예술에 대한 본인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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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1. 왜 예술을 컬렉팅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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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구미술관, 실감영상으로 만나는 대구 근현대 미술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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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신작 세계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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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 Good Friday

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별로 의식하지 못한채 살아오다가 코로나 이전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한 인스타그램을 보며 내가 이상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생각해보니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평소에 낯선 곳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자연보다는 도시를 더 좋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저에게 휴식은 쉬는 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이게 조금 질리면 합정동 땡스북스엘 가곤 합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아이패드로 이것저것 검색하다 집에 오는 것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납득할 만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미술사를 공부한 이래 답사라는 명목으로 빈번하게 국내외를 다녀왔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답사는 논문 자료를 위해 의무적으로 가야만 했고, 목표가 있는 떠남이기에 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따로 시간과 돈을 할애해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이미 충만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여행을 싫어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저 떠남의 제목이 답사냐, 여행이냐의 차이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마지막으로 중국과 일본에 답사를 다녀온게 2018년인데 벌써 4년이나 흘렀네요. 코로나가 정리되면 여름과 겨울에 가까운 대만, 일본에서 하는 특별전에 맞춰 해외답사를 준비할까 합니다. 함께 갈 참가자를 모집해서 특별전 관련 스터디를 하고 답사까지 다녀오는 방식입니다. 반나절간 전시를 보며 공부하고 저녁에는 낯선 도시에서 한 잔하며 뒷풀이를 하는 그 날. 생각만 해도 들뜨고 설레게 되네요. 어서 그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가끔 외국의 풍경이 그리워질 때면 듣는 음악이 있는데 아마 아시지 않을까 싶어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떠나자>라는 곡입니다. 음악도 좋지만 저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라는 앨범 타이틀이 더 와닿더라구요. 많은 것을 그리워하게 하고, 또 앞으로의 여행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 편히 쉬시구요.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

▶ 에피톤 프로젝트,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