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서울미술관]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2022. 4. 14.

2022. 04. 15(금)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서울미술관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 서울미술관

1. "2002년 갤러리 현대에서 《한국의 화가 박수근》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박수근 선생의 그림을 한 점 한 점 보는데, 그 안에서 마디 굵은 손으로 주름진 일생을 일구며 사셨던 어머니가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림 앞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 듯 가슴이 뛰었고 그 자리에서 <모자(젖 먹이는 아내)> 드로잉 20호를 구입했습니다. 제게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상기시키며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위로해주는 작품입니다."(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회장)

2. 서울미술관을 설립한지 딱 10년이 됐다. ‘2년이나 견딜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시선을 딛고 10년째 문을 열고 있다. 개관 후 3년간 34억원 적자가 나기도 하고, 정부 지원금도 못받지만 견딜수 있었던 건,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처럼 '미술품 사랑' 덕분이었다.

3. "미술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작품 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안병광 회장)

4. ⟪두려움일까 사랑일까(Fear or Love)⟫ 전시는 약 800평의 공간에서 선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시로 4월 13일에 개막했다. 한국 근현대 거장 31명의 주요 작품이 나오며 2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었다. 김환기, 도상봉,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등이다.

5. 제1전시실 ‘그리다’에서는 구상부터 추상, 극사실회화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조형언어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그린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6. 제2전시실 ‘바라보다'에서는 색채를 뛰어넘어 우리 미술의 우수한 정신성과 철학을 기품있게 담아낸 대작들을 볼 수 있다.

7. 지난해 새로 소장한 김환기의 <아침의 메아리 04-VIII-65>(1965)로 최초로 공개, 개관 10주년의 의미를 더한다. 안병광 회장은 "<아침의 메아리>는 앞으로 나아갈 서울미술관의 10년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자부심을 보였다.

8. 전시는 박생광의 1983년작 <범과 모란>으로 시작한다. 인왕산에 자리한 서울미술관에 수호신과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전시실 벽에는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는 박생광의 글이 써있다.

9. "한국 근대 미술은 그 가치와 아름다움에 비해 국내외적으로 알려지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미술관은 한국 근대 미술의 역사적 가치와 미학적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요 미술 작품을 소장-전시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석파정의 아름다움을 보러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애쓰고 있습니다."(안병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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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rator’s Note

저는 이번 전시에 나오는 것으로 홍보된 작품 중에서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2020년에 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년 전시에서 봤던 작품이거든요. 천경자의 대표 작품이기도 하죠. 천경자가 20여 년간 재직했던 홍익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1974년에 아프라키 여행을 다녀와서 그린 작품입니다. ‘49페이지'란 여행을 떠날 때의 나이가 49세였던 것을 의미합니다.

천경자의 회화는 삶과 사랑의 애환, 낭만, 고독 등의 여러 감정을 환상적인 색채 감각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도 거기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경자는 이 작품을 두고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리고 2년 후에는 같은 제목의 에세이(『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천경자와 그의 작품에 대해 잘 보여주는 말은 ‘화려한 슬픔'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1세대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가 천경자에 대해 “작가가 체험한 인생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슬픔과 황홀함을 모두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되새김질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예술을 하는 사람”, “아름답고 즐거워 보이기만 하는 이 환상의 세계에는 화려한 슬픔의 숨결 같은 것이 조용히 넘나드는 느낌”이라며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 천경자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아 안타깝다며 일부러 음울한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천경자 본인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개인전을 오픈할 때면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화려한 패션으로 등장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곤 했죠.

천경자는 1960년대부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에세이를 출간하며 작가로서도 활동이 활발했는데 스스로 “내 온 몸 구석구석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그 뒤로 천경자가 스스로 명명한 ‘여인의 한', ‘슬픈 아름다움' 등의 정서가 최순우의 평론을 비롯하여 이후 평론의 기본 논조가 되었고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관점의 해석이 필요한 시간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조만간 서울미술관 전시보러 가보려고 합니다. 간 김에 지난 주에 소개해드린 석파정도 둘러보고 와야겠네요 :)

온라인 미술관이 실제 예술 체험을 대신할 순 없다.

1. 아일랜드 출신 큐레이터 폴 오닐 인터뷰

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지금 상황에선 온라인 공간이나 버추얼 환경도 전시를 위한 생산적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환경은 전시를 탐색하는데 분명한 제약이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모니터 스크린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예술가·예술과 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3. 큐레이터는 본래 전문지식을 가지고 미술관 컬렉션을 관리하는 이를 의미했지만 요즘엔 예술활동과 유사한 창조적 활동을 하는 집단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폴 오닐은 1987년을 구체적 변화의 시작점으로 보며 오늘날까지의 큐레이터십의 역사를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조망했다.

4.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에서는 문화 생산의 측면에서 큐레이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뤘다.

5. "무엇보다도 큐레이팅이란 작업이 전시장의 작품(오브제) 중심의 생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전시는 참여와 협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또 비평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싶었다. 비평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

6. 코로나19 판데믹을 맞이한 상황에서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통제되고 있는 시기에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살펴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큐레이터와 동시대 예술가는 시민으로서 이 위태로운 상황에 우리의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회적으로 포용할 수 있게, 변혁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정의했다.

7.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관들이 행했던 온라인 전시에 대해 그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8. "예술이 어때야 한다, 전시가 어떻게 돼야 한다는 제한을 두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는 온라인 공간이 글로벌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곳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은 큐레이팅이라기보다 에디팅, 자기표현, 유사 공공공간일 뿐이다. "

9. 그리고 맥락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답게 많은 큐레이터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하듯 포스팅마다 별개 작품을 소개하고 짤막한 단상을 올리는 유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10. "인스타그램은 예술 경험을 위한 사회적, 일시적 공간일 뿐이다. 인스타그램은 대부분 맥락의 정보가 없는 다른 이미지와 병치해 우리 자신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을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활발한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고 좋은 큐레이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11. 큐레이팅이란 하나의 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명확한 궤도로 진화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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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부르키나파소에 지어진 쇼게 중고등학교. 쇼게 중고등학교는 건물 밖에 나무 기둥을 설치해 강렬한 햇빛을 차단할 수 있게 했다. @Francis Kéré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는 프란시스 케레(56)

1.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는 부르키나파소의 프란시스 케레(56)다.

2. 2010년 들어 프리츠커상은 지역의 가치를 담는 건축, 지역에서 행동하는 건축, 더 나아가 삶과 사회를 바꾸는 건축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3. “서구 · 백인 · 남자 중심이던 프리츠커상의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굉장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보편적인 이슈를 담아내 주목 받았듯이 지역성 안에서의 보편적인 가능성을 발굴하고,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는 건축에 대해 건축계도 주목하고 있는 것”

4. 프란시스의 케레에 대해 “매우 척박한 땅에서 지구와 지역 주민을 위해 지속가능한 건축을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케레는 아프리카의 진흙으로 사회를 바꿨다.

5. 처음에 부르키나파소의 사람들은 “겨우 진흙으로 학교를 짓겠다고 밭에서 일하는 대신 그렇게 오랫동안 유럽에서 공부한 거냐”는 원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케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흔한 지역의 소재를 활용해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고 말했다. 그래야 이 척박한 땅에서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6. 진흙에 시멘트 등을 섞은 강화 벽돌을 만들었고, 학교 지붕에 특별한 처방을 했다. 마을의 집이 지푸라기로 지붕을 만들었다면 케레는 값싼 금속 막대로 얇은 강판 지붕을 들어 올렸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에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마을에서 자연 환기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7. 그는 “척박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항상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처럼 건물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8. 휴일을 맞아 집에 들른 케레가 다시 학교에 갈 때면 그는 마을 풍습에 따라 집집이 돌아다니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 간도의 모든 여인이 옷깃을 열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동전 한닢을 케레에게 건넸다. 이 모습에 감명받은 7살 케레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모든 여인이 저를 사랑하는 거죠?”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그들이 너의 교육에 도움을 주는 것은 네가 성공해서 돌아와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바라서란다.” 케레에게 ‘공동체’가 각인된 사건이었다.

9. 선생님을 위한 주택, 도서관 등이 잇따라 지어졌다. 케레의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이제 다른 지역의 건설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돈을 번다. 그가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켰던 이유이기도 했다. 건축을 통해 마을이 영감을 얻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10. 수상 소감은 이렇다. “부자라고 해서 물질을 낭비해선 안 되고, 가난하다고 해서 더 좋은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누구든 좋은 품질과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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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1. 디자인아트페어2022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2022.04.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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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년 콜렉터가 당한 가짜 그림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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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술을 보는 방법> 강의 시작합니다 :)

코로나19가 생기기 직전인 2020년 1월에 일본미술사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강의를 쉬었습니다. 간혹 외부 강연 요청이 오면 회사에 신고를 하고 특강 형식으로 하긴 했는데 늘 아쉬웠습니다. 원래는 3월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상황도 심각하고 오랜만에 하는 것인만큼 첫 강의는 새로운 내용으로 하고 싶어서 준비하다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ㅎㅎ 새로 시작하는 강의 제목은 <미술을 보는 방법>입니다. 조만간 예전부터 해왔던 미술사 정규 강의(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 일본미술사 등)도 하겠지만 일단 이 수업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기존에 제 강의를 들으셨던 분들도 수강 가능한 내용으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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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 Good Friday

얼마 전에 지하철 장애인 시위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보면서 10여 년 전에 봤던 EBS 방송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 이 방송을 보고 크게 감탄했었죠.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런 시대에 다시 보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EBS 역사채널e에서 방송한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주제의 짧은 영상인데 조선시대에 시행한 장애인 복지정책입니다. 지금과 비교해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조선이 앞서나간 선진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 미술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듭니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가, 객관성을 가질 수 없어서 그런가, 이러면 안되는거 아닌가’라며 엔간히(?)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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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오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호환, 마마’를 빼고 혐오를 넣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무분별한 혐오가 팽배해진 시대가 온 듯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죠. 저는 미술사 책을 보면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이 들어서 이를 나름의 도피처로 삼는 편입니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득 이 글을 읽으시면서 어떤 도피처를 떠올리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 편히 쉬시고요.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