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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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26(금)

<아트앤팁> 27호

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고전의 매력은 차분하게 음미하는 데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텍스트의 맛은 씹을수록 달게 느껴집니다. 공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활자 중독에 가깝습니다. 관공서나 은행에 가서 오랜 시간 대기를 해야될 때에도 정책이나 금융상품 안내서를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영화관에 가도 보고자 했던 영화에 앞서 다른 영화의 브로슈어 읽는 재미를 좋아합니다.

이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계신 여러분도 저와 같은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문장을 읽는 것에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말이 있습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안목은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반대 지점에 놓여있는 이 느낌의 간극을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뉴스레터용 웹사이트를 오픈했습니다. <아트앤팁> 뉴스레터는 작품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 아트앤팁 뉴스레터 : artntip-newsletter.com

이 웹사이트는 유료 구독제로 운영하지만 뉴스레터는 무료로 계속 병행할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웹사이트의 콘텐츠가 차차 더 많아지긴 하겠지만 뉴스레터만 받아보셔도 충분할 정도로 퀄리티는 계속 유지할 거에요. 처음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처럼 금요일 오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같이 누려가면 좋겠습니다. 지인분들께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 미술사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

p.s.
요즘 일요일 저녁마다 ZOOM으로 미술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업진행이 꽤 쾌적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저랑 같이 공부하실 분들은 9월 4일(일)부터 하는 <서양미술사 기초스터디>를 참고해주세요 :)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해외에서 환수한 문화재들을 모아 선보이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문화재 중 많은 수가 해외에 산재해있습니다. 현재 통계로는 25개 국가에 21만여 점이 해외에 있다고 하네요.

그중에는 약탈당한 것도 많지만, 공식적인 매매로 나간 것도 있어서 문화재를 환수해오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약탈당한 유물은 약탈당했다는 근거 제시가 협상의 필수 조건이고, 매매로 나간 것은 협상의 대상도 안되기 때문이죠. 그냥 사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서 이를 조사하여 환수해오는 일을 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10년 전에 설립했는데 아무래도 예산이 넉넉한 편은 아니라 민간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만 점차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이에 따라 예산도 늘어가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설립 10주년 기념 전시로 그동안 기관의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기관 특성상 단순히 기관 홍보 행사를 넘어 다양한 장르의 문화재들, 그중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추천드립니다.

총 40여 점의 작품이 나온 이번 전시에서 특히 꼭 보셨음 하는 작품은 3점입니다. <독서당계회도>, 정선의 <겸재정선화첩>, <나전국화넝쿨무늬합>입니다. 그중 <독서당계회도>를 소개해드립니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입니다.

<독서당계회도>, 1531, 비단에 먹과 색, 91.5x62.3

조선 초기인 1531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계’는 우리가 평소에 계모임할 때 그 ‘계’입니다. 본래는 사대부들이 친목을 위해 갖는 모임을 의미했는데 현대에 들어와 사금융 모임의 성격이 짙어졌죠. 중국에서는 4세기에 서예의 성인으로 불리는 왕희지가 소흥 난정에서 41명의 문인들과 어울린 ‘난정수계' 등 역사가 긴 풍속입니다. 그들을 추앙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 역시 계모임을 갖는 게 일상이었죠. 계회도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여러 계회도 중에서 <독서당계회도>는 세종 때 집현전 소속 젊고 유능한 문신들에게 연구년처럼 휴가를 주고 독서할 수 있게 한 사가독서제에서 비롯한 모임을 그린 겁니다. 이후 마포와 옥수동 쪽에 독서당도 설치하여 이곳에서 공부하며 모임을 가졌죠. 이이, 유성룡, 정철 등 조선 중기 유명한 사대부들도 이 독서당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들의 모임을 그린 1570년 작 <독서당계회도>는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독서당계회도>는 1531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계회도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르고 유려한 산수풍경 때문에 계회도를 말할 때 언제나 첫 손으로 꼽혔던 작품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어서 늘 아쉬웠는데 올해 3월에 미국 경매를 통해 드디어 환수해왔다고 합니다.

사대부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지만 모임에 참석한 인물 표현보다 산수가 더 부각되는 게 우리 계회도의 특징입니다. 상단에는 실경에 근거한 산수를 그리고 중앙에는 모임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작게 그려넣는 방식이죠. 그리고 하단에는 모임에 참석한 인물들의 이름, 본관, 생년, 관직명 등을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래서 계회도는 회화 작품으로서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사료로서도 아주 중요한 화목입니다.

이 작품 상단에 그려진 산수는 동호독서당이 있던 현재 옥수동 일대(동호대교와 성수대교 사이)의 산을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한강뷰의 아파트들이 자리하고 있어 가려져 있지만요. 산수 표현방식은 당시 유행했던 안견파 화풍(화면의 3단 구도, 근경의 비스듬하게 오른 언덕의 몇 그루의 나무들, 산 표면에 칠한 짧은 선과 점들 등)을 엿볼 수 있어 조선 초중기 회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자세히 보면 사대부들이 타고 있는 배에서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고, 그 옆에 있는 작은 배에는 술동이만 실려 있습니다. 쉽게 말해 술을 짝으로 마시고 있는 중이죠. 오른편 강가에는 연회가 벌어지는 배의 떠들썩함에 무심한 듯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는 어부들이 그물을 치고 있습니다. 왠지 모를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정경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직접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면 한가로운 풍경 속 한강의 물살 소리에 이따금 유쾌한 모임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점점 번잡해져 가는 시대에 참 그리운 정경 같습니다.

▶ 전시 웹사이트

[Book]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 / 강철구, 안병직 편(용의 숲, 2011)

미술사 강의를 할 때마다 항상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스 미술이 대표적이다. 이를 말할 때 나도 모르게 한 번 입을 다물고 한 템포 쉬었다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 그 이유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단어가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미술사를 지역으로 구분할 때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라고 한다. 동양미술사는 한국 외의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일본, 인도미술사를 통칭할 때 사용한다. 서양미술사는 유럽의 미술사(현대에 미국미술도 추가)를 의미한다.

최근 직장인 법정교육의 미술사 강의 영상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어서 얼마 전에 원고를 모두 써서 보냈다. 주제는 크게 동양과 서양미술사 비교다. 처음 목차를 만들면서 꽤 고심을 했다. 동아시아의 고전 수묵화와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회화를 비교하는 게 목표라서 당연히 ‘동아시아의 회화와 유럽의 회화 비교’라고 썼지만 결국 수정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겐 ‘동양화와 서양화’가 더 익숙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중성도 고려해야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썼지만 마음 한 켠에는 동양화면 인도회화, 동남아시아 회화 다 들어가야 하고, 서양화면 유럽 외에 미국미술도 들어가야 하는데 적확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게 못내 깨름칙했다.

내 개인 논문을 쓰거나, 나의 전공을 말할 때는 일본과 중국 청나라 회화의 교류를 연구했으므로 ‘동아시아 회화교류사’라고 말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용어인 동양과 서양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많이 난감하다. 근대 일본에서는 동양화, 서양화, 그리고 자신들의 미술은 별도로 ‘일본화'라고 구분했다. 이 구분법이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미술대학에서 동양화과, 서양화과라는 명칭을 볼 때마다 언제쯤 바뀌려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 강의할 때는 서양미술사 전체 흐름 위에서 설명해야 하므로 그리스 미술이 서양미술의 고전이 된 이유, 이후 유럽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스 미술이 갖고 있는 여러 특징 중에 이후 유럽 미술과 관련있는 부분 위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실제 유럽인들은 자기들 문화의 원천이 그리스에 있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서양미술사의 대표적인 고전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는 그리스 미술 챕터의 제목이 ‘위대한 각성'이라고 되어 있다. ‘각성'은 깨우치지 못하고 있던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을 때 쓰는 단어다. 마치 앞 시대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문명이라고 보기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문명이 제대로 시작되었다는 식의 인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거기에 호들갑스럽게 ‘위대한'까지 붙여줬으니 그에게 그리스 미술이 얼마나 위대하게 여겨졌을지 쉽게 짐작이 된다. ‘크… 증말 위대하다 위대해'라는 냉소가 절로 나온다. 사실 그리스 미술은 이집트 미술에 많은 부분에서 빚을 졌다. 그런데 이런 영향 관계를 축소시켰다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문화는 우열의 관계로 보면 안된다고 배워왔다. 특징을 찾은 후 다양성의 관점으로 보는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당연한 자연 법칙이듯 문화 역시 주도했던 지역과 그에 영향을 받은 지역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열등한 것도 아니오, 거꾸로 우리가 영향을 줬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유럽인들은 그리스부터 문명이 ‘제대로' 시작한 이래 현재 지구상의 문화 패권을 유럽이 쥐게 되었다는 자부심 하에서 많은 학문들이 연구되어 왔다.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사를 세계사의 중심으로 보는 편협한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간행된 책이다. 사학과 교수들의 관련 논문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그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역사를 인식함으로써 생긴 오류와 이를 수정하려는 이론들을 담고 있다. 논문집이지만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미술사 논문들을 보면 가끔 ‘갈라파고스 제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사의 한 분과면서 일반 사학계와 동떨어진 채 이미 사학계에서 정리가 되어 죽은 개념과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오류를 범해 비웃음살까 두려워 용어 하나하나 검증하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읽었는데 사학의 세계관, 지역 인식에 많은 공부가 되었다.

p. 191

유럽중심주의는 모든 전문 연구에 스며들어 있지만 그것들을 통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역사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이미 유럽 중심의 역사상이 형성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19세기 유럽은 자신만이 진정한 변화를 경험했다고 자부하고 그 변화를 과거의 흐름 속에서 추적하는 일을 역사학의 임무로 부과했다. 그 역사라는 것은 새로이 등장한 국민국가에 정체성과 정당성을 부과하기 위한 민족사 서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문명사적 틀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그것은 자생적인 변화 능력을 유럽에만 부여하여 ‘역사'를 독점했다. 유럽의 주도 아래 오직 유럽의 자극을 통해서만 역사는 단선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시간도 유럽인의 독점물이었다. 유럽만의 역사는 유럽 중심의 세계사로 확대되어 유럽의 내적 발전에 부합하는 거시적인 시간대를 설정했다. 세계사는 고대-중세-근대(-현대)로 3분되어 고대-중세의 단절은 무시된 채 유럽은 ‘지중해 고대'의 적자가 되고 중세 이래의 변화와 발전은 오직 내적 역동성으로만 설명되었다. ‘서구의 대두'를 설명하는 가운데 서구의 역사학은 그 요인의 형성 과정을 훨씬 이전의 시대에까지 끌어올려 추적했고, 급기야 인류사 전체를 하나의 설명틀로서 관통했던 것이다.

《프리즈 서울》에서 꼭 봐야할 섹션

올해 키아프와 프리즈 공동 개최(9/2-9/5)는 아마 작년만큼의 성과를 얻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는 경제 상황도 좋았고, 코로나19에 의한 보복소비도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거든요.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제2의 IMF가 진짜 오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라고 하고, 암호 화폐의 (예견된) 몰락, ‘10만 전자’를 외쳤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하향세인 주식 시장, 기준 금리 인상과 고물가 등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어서 불안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욜로'를 외치던 2, 30대는 어느새 ‘무지출 챌린지'를 수행하고 있고 말이죠. 2007년경에 겪어봤던 미술시장의 거품이 사라지는 것을 또 겪어보나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전시의 측면에서만 보면 기대되긴 합니다. 특히 ⟪프리즈 서울⟫은 메인 섹션, 프리즈 마스터즈(Frieze Masters),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의 세가지 섹션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에서 프리즈 마스터즈는 꼭 보고 싶은 섹션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리즈 마스터즈는 미술사에 기록된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입니다. 올해 한국에서도 선보인다고 해서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과 같은 서양 고전미술을 볼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현대미술사 작가로는 입체주의의 파블로 피카소, 추상표현주의의 빌렘 데 쿠닝, 네오 다다의 로버트 라우센버그, 미니멀리즘의 칼 안드레와 솔 르윗, 팝아트의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서양미술사의 압축 전시가 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키아프와 프리즈를 보러 가신다면 프리즈 마스터즈도 꼭 관람하시면 좋겠습니다.

▶ 프리즈 서울 웹사이트

[News]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밤 산책

포시즌호텔,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 강북삼성병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돈의문은 본래 조선이 개국하고 조성된 서대문의 역할이었고 한양도성 4대문 중에 유일하게 일제에 의해 철거된 문이기도 합니다. 이후 근현대를 지나면서 돈의문 안쪽 첫 번째 동네는 다양한 층위의 역사가 쌓이게 되었죠.

서울시에서 이를 복원하여 마을 자체가 하나의 근현대사 박물관이기에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가본 적은 없는데 거리를 감상하는 것이기에 밤에도 산책하며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사진을 보니까 무척 운치있고 한 번쯤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 하고 있는 전시는 19시까지(화-일)만 볼 수 있지만 거리 투어는 밤에도 가능합니다. 조금 선선해진 요즘이라면 산책삼아 가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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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웹사이트

Feel Good Friday

처서(處暑)의 풍경

이번 주에 문득 더위가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하늘을 보니 많이 높아졌더군요. 저는 우리나라가 참 좋다고 느끼는 여러 요소 중에 하나가 명료한 계절감입니다. 각기 다른 계절을 살아가며 느끼는 감각들이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3월이 되면 골목길에는 구석구석에 2월에 내린 눈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언제 추웠냐는 듯 따스함이 느껴지고, 10월 말에는 그간 ‘서늘하다’에서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고 보니 저는 계절이 바뀌는 경계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8월 말도 같은 이유로 좋아합니다.

8월 초중순에는 귀가하면 에어컨부터 찾고, 찬 물로 샤워한 후에 일부러 물기를 덜 닦은 채 자리에 누워 열대야를 맞이합니다. 선풍기 바람이 얼굴에 오는 것을 싫어하기에 다리쪽에 맞춰 놓은채 말이죠. 그러다가 새벽에 더워서 깨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하루가 피곤하지만 이런 열대야도 1년에 얼마 맛볼 수 없는 묘미라는 생각으로 즐기는 편입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8월 말이 되면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고 덥지만 왠지 모를 선선함이 함께 느껴져서 곧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만 합니다. 특히 추석 직전의 거리 풍경을 무척 좋아합니다. 추석이라는 연휴가 곧 온다는 기대감과 형광펜같이 쨍했던 햇빛이 조금 누그러져 노란빛의 색감으로 바뀌고 하늘은 더욱 파래지면서 이 때만의 독특한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이 절기를 처서(處暑)라고 합니다. 딱 지금처럼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처서와 관련하여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주 적확하죠. ㅎㅎ

이걸 말로 설명하려니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 찍어둔 게 있나 찾아보니 마침 가을 초입에 촬영한 사진이 있어서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