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끌거리는 표주박으로 메기를 잡을 수 있는가?”

2. 이 작품은 약간 엉뚱해보이는 이 질문을 소재로 일본 무로마치시대 선승화가 죠세쓰(如拙)가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선승 31인이 이 질문에 대한 소감을 시로 적었다.

3. 이렇게 이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질문과 답(흔히 선문답이라고 하는)을 ‘공안(公案)’이라고 한다.

4. 그림을 보면 화면 왼쪽으로 대나무와 물줄기를 그려넣고 반대편은 여백에 가깝도록 비워놓은 것으로 보아 중국 남송대 마하파 회화의 변각구도를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바위를 그릴 때 진한 먹으로 거친 질감이 느껴지도록 그린 점 역시 남송대 회화의 영향이다. 그리고 주제를 드러내는 인물과 메기를 중앙에 크게 그렸다.

5. 이 작품은 본래 병풍 앞뒷면에 그림과 시가 각기 걸려있던 것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이렇게 한 화면에 그림과 시를 적는 형식을 ‘시화축(詩画軸)'이라고 한다. 15세기 초반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형식이다.

6. 무로마치막부의 통치자였던 아시카가 가문의 쇼군들의 문화 정책에 힘입어 지배층이었던 무사들은 마침 13세기에 중국에서 들어와 크게 성행했던 선종을 숭상했고 이와 함께 차, 수묵화 등 중국의 예술품을 수입하여 향유했다. 교토에 있는 금각사(金閣寺), 은각사(銀閣寺)와 같은 화려한 건축도 이 때 조성된 것들이다.

7. 일본의 고전미술은 이처럼 주제의식을 직관적인 조형언어로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 역시 “미끌거리는 표주박으로 메기잡기"라는 불가능한 일에 하릴없이 애쓴다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너무 직관적이어서 더 이상의 사색을 유도하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화면에 모든 내용이 완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8. 죠세쓰(如拙)라는 화가의 이름 역시 그러하다. 이 이름은 노자의 『도덕경』에 “큰 기교는 오히려 졸렬한 것처럼 보인다(大巧如拙)”라는 의미를 살려 지은 것이다. 이 문장에 담긴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차마 할 수 없는 방식이다. “나는 앞으로 정직하게 살거니까 이름을 ‘이정직'이라고 해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말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 일상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것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름을 짓는 것은 다르니까.

9. 이 작품도 정말 높은 예술적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겸손한 필묵법과는 거리가 멀다. ‘대교여졸(大巧如拙)’을 표방하지만 그림은 중국회화사에서 가장 스타일리쉬했던 남송대 궁정화풍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10. 대교여졸을 제대로 실천했다고 할 수 있는 김정희의 <세한도>와 비교하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 예술이나 철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시대,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 그로서는 이게 최선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럴 순 없다. 다만 예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우리와 다를 뿐이라고 봐야한다.

11. 대신 이런 직관성은 명쾌하기 때문에 보는 맛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 예술 향유의 1차 목적이 즐긴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 고전미술은 적합한 사례다.

12. 1차원적인 조형성 때문에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많다. 그래서 일본 고전미술은 미술의 여러 정의 중에서 그 시절에 흔치 않았던 ‘미술을 위한 미술(Art for art's sake)’에 가장 가까웠다고도 할 수 있다.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런던의 리처드 내기 갤러리(Richard Nagy Gallery)가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1890-1918)의 작품으로 부스를 마련했습니다. 총 40여 점으로 일반 미술관 전시에 준하는 규모입니다. 리처드 내기 갤러리는 에곤 실레 작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일한 갤러리라서 진위작 검증에서도 엄정하게 다뤘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는 곳이죠.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선의 표현 덕분에 에곤 실레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얼핏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선인데 전체를 놓고 보면 명확하게 대상과 그 마음까지 포착해냈다는 점에서 항상 감탄하며 보곤 했습니다. 뉴스레터를 보내드리는 금요일(9/2)부터 시작되는 키아프와 프리즈에 가시면 꼭 들러서 관람하시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보기 전에 영화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도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우리 산수 담은 분청》을 주제로 현대 분청사기 특별전을 키아프 서울에서 선보입니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에 여전히 계승되고 있던 청자의 제작기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새로 만든 도자기입니다. 그런데 그 미감은 청자와 상당히 달라서 단순히 청자의 쇠퇴 양상으로 보지 않고 단독 장르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분청사기는 지금 봐도 감탄할 정도로 기법이 세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문 방식은 마치 추상회화를 보는 듯하죠. 도자기의 동체를 안료에 절반만 담궜다 꺼낸 ‘덤벙' 기법, 프랑스 앵포르멜 회화처럼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돼지털이나 말총에 안료를 묻혀 스윽 스크래치내듯 칠한 ‘귀얄' 기법 등 1400년대에 어떻게 이런 미감을 추구했을지 놀랍기만 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우리 산수 담은 분청》에 출품한 이수종, 박래헌, 이강효, 최성재, 허상욱, 김진규, 박성욱 등 7인의 분청사기 작가들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분청사기는 현재 우리가 볼 때 참 현대적이다라는 느낌을 이미 줬는데, 그렇다면 현재 만든 이 작품들은 동시대인 지금 볼 때 어떤 느낌인지, 어떤 미적 가치로 해석해야 좋은지 등을 염두에 두고 보시면 의미있는 관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직 못봤지만 전시공간은 아마 키아프에서 제일 멋진 공간이지 않을까 살짝 장담해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