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앤팁> 29호

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아이폰3GS로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대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마트폰의 매력에 푹 빠져서 아이폰으로 많은 것들을 시도했죠. 손바닥 크기의 작은 물건이 주는 편리함에 늘 신기해하며 저의 일상과 공부에 최적화시키려 하던 때였습니다. 아마 다들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폰을 탈옥해서 USB처럼 쓸 수 있게 하고, 바탕화면도 아이폰 고유의 것에서 벗어나 여러가지 런처를 설치해서 꾸미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처럼 말이죠. 처음에는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서 쓰는 것을 선호했지만 스마트폰이 익숙해진 후에는 순정 그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로 꾸미는 맛을 즐기다가 결국 순정이 최고더라구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자동차 튜닝을 취미로 하는 분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온갖 장식을 꾸미는 재미를 즐기다가 어느 기간이 지나고나면 결국 아무 것도 손대지 않은 상태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저는 미술사를 처음 공부할 때 서예사도 함께 배웠습니다. 아무래도 글씨를 쓰는 붓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동일했던 동아시아 회화(문인화)의 특성상 회화 양식을 분석하려면 서예에 대한 안목도 필수였기 때문입니다. 글씨를 쓰는 습관이 결국 그림을 그릴 때에도 녹아들테니 말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서예사를 공부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예사와 작가별 필법을 익히는 것은 미술사 연구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씨만 보고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야 할 정도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잊었을 겁니다.

처음 서예사를 공부할 때는 송나라 휘종의 이 작품처럼 스타일리쉬하고 화려한 글씨체에 감탄했습니다. 휘종은 직접 서예와 그림을 그리고 중국 최고의 도자기 중 하나인 여요 자기 생산에 힘을 실어줬던 예술가이자 후원자적인 면모가 큰 인물입니다. 예술가답게 감수성이 발달한 탓일까요? 그의 글씨를 보면 황제답게 거침없으며 자존감이 드높고, 예민한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본래 시원시원하게 뻗어내리는 글씨를 선호해서 그런지 당시에는 휘종 글씨체에 눈길이 가더군요.

세월이 흐른 지금은 휘종의 글씨를 별로 안좋아합니다. 장식성이 지나칠 정도로 과해서 볼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지고 시각적인 화려함 때문에 깊이 음미해야 알 수 있는 맛이 별로 느껴지기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예전에 너무 스탠다드해 보여 별로 멋을 느끼지 못했던 당나라의 해서체를 좋아합니다.

이 작품은 당나라의 구양순이라는 사대부가 쓴 <구성궁예천명>이라는 글씨입니다. 흔히 볼 수 있던 이른바 ‘정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씨를 ‘해서'라고 하는데 앞에서 본 휘종의 글씨도 해서(행서풍)입니다. 같은 해서체라도 쓰는 이에 따라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죠. 구양순의 글씨가 해서의 기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되 그 안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갖는 게 더 높은 차원의 예술행위일 겁니다.

시간이 또 지나면 어찌 변할 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저는 장식적인 것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찾으려고 했던 작품을 좋아합니다. 아이폰을 마음껏 장식하는 즐거움을 누리다가 결국 기본으로 돌아온 취향처럼 미술도 처음에는 시각적인 즐거움(극사실주의, 초현실주의 같은)에 빠졌다가 알면 알수록 기본으로 돌아가게 되는 듯합니다. 결국 취향과 안목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취향과 안목은 사실 같은 열에 놓을 수 없는 개념입니다. 취향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안목은 객관성을 지향하면서도 주관성이 인정되는 능력입니다. 주관적으로 취향을 즐기다가도, 때로는 안목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전에 취향을 발견하고 안목을 성장시켜야겠죠.

추석 때 좋은 시간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추석을 쇠고 이번 주도 보령에 와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천안에 가있을 예정입니다. 방치된 유적을 찾는 일이 녹록치는 않지만 오가는 차도 거의 없는 푸른 논길을 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연휴 끝나고 일상에 복귀하시느라 무척 피곤한 한 주였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 편히 쉬시구요.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