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요즘 두 가지 일로 조금 정신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책을 출간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무실 이전입니다.

책 출간 준비

책 출간은 독립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겼는데 이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네요. 지난 3월부터 출간기획안과 원고 샘플을 모아 출판사들에게 투고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관련 책, 유튜브, 블로그 등을 찾아봤는데 출판사 100여 곳에 보내고 거절 당하는 게 흔한 일이더라구요. ‘나는 이렇게 책을 출판했다’는 류의 내용이 많은 것을 보니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주제가 독창적인 분들은-과장해서 말하자면 수영으로 태평양을 건너간 경험 같은-한 번에 출판사와 계약을 하기도 하지만요.

잘 아시다시피 미술 관련 교양서, 에세이는 매우 많습니다. 저의 경우는 시작부터 독창적이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임할 수밖에 없었죠. 미술사 전공자이고 큐레이터라는 경력 하나만 믿고 갈 뿐이었습니다. 출판의 목표는 미술을 소재로 삼은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공부한대로 작품을 미술사적 분석대로 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여기에서 위안받을 만한 점을 찾아 나를 위로하고, 독자를 위로하는 식의 이야기는 제 능력 밖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가 도저히 못견딜 것 같기도 하구요. 전문적인 내용을 담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제 연구 및 큐레이터 경험을 녹여서 쓰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맞춰서 나름 주제를 잡고 목차를 구성해서 여러 출판사에 보냈는데 회신조차 없는 곳이 많아 기다렸다가 다시 다른 곳에 보내기를 3개월 정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어느 출판사와 얘기가 잘 돼서 방향성을 잡은 상태입니다. 첫 책이니 출판 전문가인 출판사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가겠다며 처음부터 결심하고 있었는데 의견을 들어보니 확실히 다르긴 달랐습니다. 다만 출판사에서 제 구성안에서 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어 아쉬움에 어찌하면 좋을지 얼마 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죠. 그런데 북디자이너인 제 동생이 “오빠, 책 한 번 내고 말껴? 뺀 부분은 다음 책에 내면 되지~”라고 해줘서 출판사에서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중입니다. 테니스공 2개 잡으려다 다 놓칠뻔 했습니다. ㅎㅎ

공간 마련

최근에 종로에 있는 사무실을 계약했습니다. 6월 말까지 명동 위워크 공유오피스에서 일했는데 장단점이 명확하여 고민을 조금 했습니다. 원래는 공간을 마련할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나름 결심을 하고 단행한 독립이지만 여차하면 박물관에 돌아간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스스로 사업할 깜냥이 안되니 그저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논문쓰고 강의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었거든요.

공유오피스가 아닌 공간을 만들면 사무실 운영, 매출 고민 등이 일상을 지배할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지금 지내는 모습이 사업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음에도 늘 발 한쪽을 빼고 있던 셈이었죠. 플랜B가 마련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성향이 이번에도 적용된 겁니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도 미술사학자로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지면 유럽으로 건너가서 미술관 도슨트하고 주말엔 축구나 보며 여생을 보낸다는 현실성보다는 낭만에 가까운 플랜B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여차하면 박물관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일을 벌이려 하다가도 일단 멈추고 고민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소극적으로 하다간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또 아쉬움이 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행히 막상 사무실을 계약하고 공간을 실측하고 이런저런 공간 디자인 구상을 하니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살짝 기대가 됩니다.

전시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되었건 누군가가 지나가듯 물어봐도 바로 목표나 컨셉을 말할 수 없다면 그 기획안은 다시 짜야 된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이 공간의 컨셉은 OO이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미술사 책도 볼 수 있고, 강의도 들을 수 있고, 작은 전시도 할 거고, 출판사 사무실이고, 개인 연구실이기도 해요”라고 말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고 어느 순간 찾아올지도 모를 브랜딩 붐업도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컨셉을 <미술사 아카데미>로 좁혔습니다. 미술사학자들(신진, 중견)의 전문 강연을 들을 수 있고 학계에서 통용되는 방법론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산안 테트리스가 맞으면 고미술 갤러리에서 작품(회화, 도자, 공예 등)을 대여해서 전시 겸 공부 참고자료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조만간 고미술 갤러리를 운영하는 분들을 만나서 대여 방식, 보험 등을 논의할 예정인데 실현 가능할지 살피려고 합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미술사 기초 강의를 중심축으로 삼되, <중국미술사 특강>처럼 주제를 잡아 분야별 선생님들을 모셔서 특강도 하고, 북토크, 독서모임 등 다채롭게 준비중입니다.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전시나 책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하면 왠지 한 주 마무리를 잘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여력이 생기면 미술사 도서관으로도 활용할 계획이구요. 공간에 잡혀 지내는 건 아닌지 등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시뮬레이션해보고 있는데 아마 직접 부딪쳐봐야 알 수 있는 문제라 일단은 유보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휴재 안내

다음 주에 공간 시공을 마친 후에 집에 있는 책들과 책장을 옮기며 하나씩 공간을 채우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8월 말일까지 책의 목차 최종안도 보내야 하고요. 뉴스레터를 보내는 게 이제는 습관으로 자리잡아 저도 즐기면서 할 정도가 되긴 했지만 벌여놓은 일들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집중을 하고자 합니다. 공간 프로그램 기획도 마련해서 9월에 오픈할 수 있도록 하고 싶고요. 그래서 다음 주부터 잠시만 휴재를 하니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휴재가 길지는 않고 9월에 오픈 소식과 함께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8월에 휴가가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구요. 그럼 9월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